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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마을약사대림(大林)에 언제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지는 입증할 만한 역사적 사료가 발견되지 않아 그 년대(年代)를 정확히 밝혀 내기가 힘들다. 그래서 구전자료(口傳資料)에 의하여 설촌(設村)의 역사를 추정하고 또 가문별(家門別) 입도조 선묘의 비문(碑文)과 족보(族譜) 등을 참고하여 대림리의 역사를 기록한다.
구전에 의하면 입석촌(立石村), 대림촌(大林村), 부귀촌(阜貴村), 도내촌(道內村), 석천촌(石淺村), 잠수촌(潛水村) 등 대림촌(大林村)을 중심으로 남쪽 우두촌(牛屯村), 서쪽 수류촌(水流村) 이라 하여 그 당시 자연촌(自然村)이였다가 서기 1259년 탐라현(耽羅縣)이 제주(濟州)로 승격하면서 행적구역 구획당시 명칭이라 한다. 그후 연도는 모르나 대림촌, 입석촌을 통합 상대(上大), 중대(中大), 하대(下大)로 불려오다 다시 서기 1884년 갑신년(甲申年) 상대리, 대림리, 한림리로 분리하여 오늘날까지 불리워오고 있다.

가문별(家門別) 선조묘(先祖墓)를 보면
*제주양씨(濟州梁氏) : 시조(始祖)로부터 18世 달해배묘(達海配墓)가 대림(大林)경내 한단이원(翰鄲伊員) 천남로경산(川南路境山) 갑좌묘(甲坐墓)(고려 충렬왕(高麗 忠烈王) 2년 서기 1276년) 입조(入祖) 18世 손거주(孫居住) 조선조(朝鮮朝) 건국초(建國初)
*밀양박씨(密陽朴氏) : 제주(濟州) 입도조(入島祖) 태사공위쟁언부파(太師公緯爭彦孚派) 사세손(四世孫) 구석(龜奭) 묘(墓)는 귀덕리(歸德里) 3666번지 내대림(內大林)과 귀덕경계(歸德境界) 대림(大林) 현(現) 18세손(世孫) 거주(居住)함.

상기 내용으로 볼 때 고려시대부터 거주 추정 약 700년전으로 본다.
옛 立石(선돌) 村 배치를 보면 궁둘왓(立石)을 기준하여 동가름, 안가름, 섯가름, 한이가름, 답대, 광이멀, 가세기왓, 뜬밭받동, 섬섬이, 이무덤, 두수께 등으로 구분되었다. 옛 大林명은 현재 상대리 일부와 부귀촌(阜歸村), 사온다리, 지향동, 목거리, 종고실 일대라 불리워진다. 그 후 上大(현재의 상대리) 中大(현재 大林里) 下大(현재 한림리)로 분리되었다.

※ 서기(西記) 1930年 마두포구(馬頭浦口)(한림매립지)주변 주거형성 대림사동(大林沙洞)은 西記 1947년 한수리에서 대림 사동으로 분리하여 명명하였다.

역대이장

역대이장
 
警 民 長
(1879년 시행)
區    長
(1916년 시행)
里    長
(1946년 시행)
1대
2대
3대
4대
5대
6대
7대
8대
9대
10대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21대
22대
23대 
24대
김용진(金溶珍)
임행관(任行寬)
이수형(李洙炯)
문창손(文昌遜)
이춘여(李春興)
임승관(任承寬)
양선환(梁瑞煥)
윤을송(尹乙松)
양갑돌(梁甲突)
김성호(金性浩)














갑용석(甲龍奭)
임창현(任昌鉉)
김창환(金昌煥)
임창규(任昌圭)
이봉규(李奉奎)



















김창희(金昌熙)
김영화(金榮華)
임춘식(任春植)
고군석(高君錫)
김태경(金太暻)
임승용(任秉龍)
부선학(夫善鶴)
고군석(高君錫)
임병효(任秉孝)
부태하(夫太河)
김여호(金汝鎬)
김도남(金道南)
김운중(金云仲)
임선준(任善準)
김한보(金漢保)
김경호(金景好)
임정언(任定彦)
신인준(申仁俊)
김철지(金喆志)
신인준(申仁俊)
신상현(申尙顯)
김군옥(金君玉)
김성택(金聖宅) 
서희윤(徐禧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