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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마을약사본리는 옛날부터 石淺村(석천촌)이라 불리웠다. 이 마을 사동(沙洞) 북방 0.5km 해상에 自然熔岩島嶼(자연용암도서)가 2개 있는데 이를 "큰여""작은여"라고 부르며 이 마을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이것을 이름하여 "石淺島(석천도)"라고 불렀으며 마을 이름을 "석천촌(石淺村)"이라고 불렀다.

西記 1212(高麗 熙宗 7)年에 제주에 현(縣)을 설치하면서 石鏡縣(석경현)으로 불렀다는 기록도 있으며 당시에는 늬커리(四肢洞)와 중동(都舍洞)에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곳은 고려시대의 문물이 발달하였던 곳이라 근래에도 마을 일대에서 古瓦(고와) 즉 고려시대의 기와가 출토한바 있다.

元의 통치 시기인 서기 1273년 고려 원종 14년(원세조 9년)에는 남송과 이론의 요충지라하여 원은 초토사 군민도달노화적(軍民都達魯花赤) 총관부를 설치하면서 늬커리(四枝洞)에 대사찰을 건축하고 당수덕 부근에 신당(神堂)을 세워 종교문화를 발달 시키고 무사들의 훈련장소인 사장(射場)밭에서는 무사들이 활쏘기를 하면서 무술을 연마하였으며 연대 및 망대를 설치하여 해상방위 및 교통통신의 요새지로 마을을 이루기도 하였다.
서기 1300년 고려 충렬왕 16년에 제주도에 14현(縣)을 설치할 때 본리(本里)에는 무인(武人)과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다하여 중국(中國) 중경(重慶)지방의 명을 따서 귀덕현(歸德縣)으로 이름지어 불렀다 한다. 서기 1370년 목호(牧胡 - 원나라 백성으로 목동일을 보던 사람 - 사람들이 사악하고 유부녀 겁탈 및 살인 방화를 자행하던 자들)의 난(亂)을 평정하기 위해 제주에 목호를 정벌하러 내려온 장군 최영(崔瑩)은 새별오름에서 목호를 토벌하고 소랭이왓(귀덕리 45번지)부근에서 난을 평정했다하여 간중이(亂終)란 지명이 만들어 졌다는 전설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서기 1609년 기서(己西) 광해원년(光海元年) 제주판관 김치(金緻)가 현제(懸制)를 폐지하고 방리제(坊里制)를 실시하면서 귀덕리가 되었고 서기 1832년 마흘동(馬屹洞)과 다교동(多橋洞), 신서동(新西洞), 사동(寺洞), 사동(沙洞), 장흥동(長興洞) , 장로동(長路洞), 라신동(羅新洞) 등 8개동이 설치되었으나 문외동(門外洞) 및 그 외의 동(洞)은 사람들이 이주로 부락이 없어지고 사동(寺洞)과 사기동(四枝洞)을 합하여 장라동(長羅洞)으로 도사동(都舍洞)을 중동(中洞)으로 개칭하였다.

행정상으로는 한일합방 직후부터 경민장(警民長) 또는 리장(里長)을 두어 마을을 책임 관리 하였다. 일제치하에서는 귀덕리를 4개 구(區)로 분할하여 리장 산하에 구민제(區民制)를 두었으며 1區에는 사동, 하동, 중동을 2區에는 장흥동과 장라동을 3區에는 성로동과 신서동을 4區에는 마흘동과 다교동을 합하여 행정을 구분하였다.

서기 1945년 해방이 되고 서기 1946년 8월 1일 제주도제가 실시되면서 구장을 리장으로 개칭하여 현재까지 부르고 있다. 서기 1948년 4·3사건이 일어난 후 서기 1950년 6.25동란이 일어나던 해의 11월 24일 마흘동이 공비들에게 피습되어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서기 1951년 6월 1일 공비방어 목적으로 성(城)이 축성되고 1대 고태원 이장 당시 귀덕리 4區는 4·3사건의 피해로 2개동이 1개동으로 합해졌고 8개洞에 각 동회장을 두어 리정을 관할하여 오다가 서기 1953년 10월 장흥동 장라동이 귀덕2리로 분리되었다가 2代 김성량(金性良)씨가 리장이 되면서 다시 귀덕리로 통합되었다.
1960년 3代 김창윤(金昌允)씨가 리장이 되면서 또다시 장흥동, 장라동이 귀덕2리로 분리되었으며 1963년 6代 양우종(梁禹鍾) 리장 당시에 귀덕 4區인 마흘동과 한교동(漢橋洞(多橋洞))이 분리되어 신흥리(新興里)로 불리어 오다가 1997년 5월 1일을 기해 신흥리가 다시 귀덕3리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역대이장

역대이장
  警 民 長 區 長 里 長 備 考
1代 梁 宗 源 洪 淳 玉 高 泰 元  
2代 梁 達 潤 金 榮 浩 金 性 良  
3代 梁 永 瑞 金 世 子 金 昌 允  
4代 梁 達 弘 李 基 元 趙 普 權  
5代 趙 才 松 洪 昌 九 高 泰 元  
6代 姜 殷 郞 金 聖 五 梁 禹 鍾  
7代 趙 致 化 姜 元 圭 金 濟 珍  
8代 梁 順 弘 李 基 淑 洪 性 化  
9代 洪 宗 業 洪 淳 謙 高 東 善  
10代 趙 才 潤 洪 銀 玉 金 宗 守  
11代 洪 順 勳 洪 淳 玉 金 濟 珍  
12代 姜 永 練 - 趙 仁 官  
13代 南 琯 熙 - 洪 景 求  
14代 金 錫 河 - 金 東 朝  
15代 調 英 植 - 高 文 昊  
16代 金 行 洙 - 梁 元 和  
17代 趙 休 周 - 金 致 沽  
18代 - - 姜 長 榮  
19代 - - 金 守 昞  
20代 - - 趙 寶 生  
21代 - - 高 辛 生  

22代

- - 金 文 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