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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마을약사石淺村(석천촌)인 귀덕3리가 고려시대에 형성되어 큰 마을을 이룬 후 조선조(朝鮮朝) 인조(仁祖)때에 귀덕리 하동에 살던 장씨(張氏)가 설촌한 것으로 전해 내려오는데 그 후손들이 이 마을에서 11代를 살아오고 있다.
그 외에 제주고씨(濟州高氏)가 11代쯤, 전주이씨(全州李氏)가 10代, 진주강씨(晉州姜氏)가 8∼9代쯤 되고 있으며 제주양씨(濟州梁氏)도 상대리경 속칭 "사운다리"에서 오래 살다가 이 마을에 정착한지 8代가 흐르고 있다.
立石里로 유명한 대림리의 동남쪽, 그리고 높이 143m의 어도오름의 서북쪽에 위치한 이 마을은 조선조 말기인 1823년경 馬屹洞(마흘동)과 多橋洞(다교동)을 합하여 新興洞(신흥동)으로 개칭된 이후 일제치하에서는 귀덕4구(歸德四區)로 불리우기도 했었다.
1966년 또다시 신흥동으로 바뀌어 불리웠으나 강구리(江龜里)와 장원동(壯園洞)과 마찬가지로 한림읍에서 법정리동(法定里洞)으로는 미분리(未分離) 상태에서 1970년 12월 말을 기해 행정편의상 1개의 里로 인정받아 신흥리(新興里)로 불리며 자체 리장제를 두어 리행정을 수행해 오다 1997년 5월 1일을 기해 귀덕3리로 불리워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