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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하귀 2리는 본래 하귀리에서 1, 2리로 분리되면서 2리라 칭하게 된 것이나 원래 옛(고려시대) 귀일촌(일명 귀일촌이라고도 칭함)의 설촌 중심 마을로 아득한 상고때부터 사람이 집거(신석기시대의 지석묘가 다수 현존함)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적어도 2,000∼2,200여년전부터 마을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측되며 고상헌상의 기록으로 보아도 근 1,0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마을이다.

본리의 리명은 귀일촌(구일촌), 귀일현, 하귀리, 귀일리, 하귀2리로 변경되었는데 고려 곡종년대(1147∼1170)에 대촌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아 그 이전 적어도 200여년전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원종 12년(271)에 삼별초의 항몽군이 입거(항파두리 구축)하였고 동 14년(1273) 려몽 연합군이 항파두성 함락시 전화(戰火)에 피해가 심했다.

고려 충정왕 3년(1251) 귀일촌에 왜구 침입이 있었으며 조선 광해군시(1609) 판관 금치가 방리 설정하면서 상귀리, 하귀리로 분리, 이후부터 하귀리라 칭하였고 또한 1995년에 하귀 1, 2리로 분리하면서 하귀2리로 되었다.

조선 정조 14년(1790)에 류구(방조부인)인 이 귀일포에 표착하였고 1953년에 본리는 고성천을 경계로 동측을 동귀리, 서를 서귀리로 분리하여 오다가 1992년에 하귀리로 리명을 환원하는 등 많은 변천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리세는 5개(미수동, 가문동, 답동, 학원동, 번대동)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고, 880여 세대에 3,100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지역의 행정, 교육, 경제, 치안, 통신, 교통의 중심으로 도시화하고 있다.

하귀리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마을의 설촌유래를 살펴보면
  • 미수동
    미수동은 입니물(일미샘)이 있어 미수동이라 하며 옛 귀일촌의 시초 마을로 (龜里라고도 칭함), 삼별초군때 수구관가에 부속관서 건물의 터가 있고 일명 구리(龜里)라 함은 지형의 형국이 거북이와 같다하여 지명도 구리(龜里)라하였다고 전하며 구리(龜里)의 몸통부에 해당하는 마을로 구두부·구복부·구미등 지형형국에 따른 지칭이 있음은 리명을 구리라 함을 뒤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말과 조선초 중엽에 이르러 입주한, 이씨(李氏), 문씨(文氏), 강씨(康氏), 조씨(趙氏)의 설촌 설이 있으나 연대로 보아 맞지 않으며 강씨(康氏), 조씨(趙氏)가 많이 거주하고 있으나 도시화의 경향에 따라 외부로부터 많은 사람이 입주하여 현재 400여세대호에 1,800여 인구가 살고 있고 각급기관이 거의 설치되어 있어서 애월읍 동부인 하귀출장소 관내의 중심적인 기능을 다하고 있는 소도시이다.
  • 가문동
    이 마을은 조선 영조년대(1776) 문충순(자가돈)이 살기 시작하면서 이루어진 마을로 문충순과 자가돈의 옳을가(可)자와 姓인 문자(文字)를 따서 가문동이라 하였다 하며 미수동의 봉천서측(鳳川西側)해안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며 몽고군이 진주하면서 병마를 조련했다는 원병대의 넓은 터가 있고 가무코지(可文串)라 하여 긴 곶(串)이 바다에 *출함이 유명하다. 현재 110여 세대 호에 500여 인구가 집거하고 있다.
  • 답동
    답동을 구성하고 있는 한 마을인 불근질(주로동)은 미수동과 아주 인접하며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원래 이씨(李氏), 양씨(梁氏)의 살았다고 하나 후에 광주김씨가 근래 다수가 살았고 빌레태역은 광산김씨가 설촌마을이며 논골(畓마을)은 畓이 있다 하여 논골이라 하는데 이 또한 광산김씨마을이다. 이 세 자연마을을 합하여 답동이라 한다. 현재 60여 세대호에 500여 인구가 살고 있고 귀일중학교가 호재하여 1880년대에 민란을 일으켰던 김진사(김지)와 제주향교 직원과 일신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한 김익수 씨를 배출한 마을이다.
  • 학원동
    이 마을은 400여 년전 광산김씨가 살기 시작하면서 이루어진 마을로 1780년대 강씨와 고씨가 입주하게 됨으로써 마을형태가 이루어졌고 1948년에 강씨가 집단입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원래 마을이름은 개물이었다. 이는 주민의 식수인 샘물에 뚜껑을 설치하여 사용한데서 연유한 것이며 마을안에 속칭 비학이 동산(飛鶴園)이 있는데 그 이름을 따서 학원동(鶴園洞)으로 개정하였다. 현재 50여세대호에 300여 인구가 살고 있는 마을이며 신우면장을 역임했던 김희수 향교직원 김상수, 제주도지사를 역임했던 김용하, 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회장의 선조가 살던 마을이기도 하다.
  • 번대동
    이 마을은 1950∼1960년대에 수산리에서 이주하여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로 귀엄저수지 축조시 수몰지역민의 이주 마을이다. 마을지명은 속칭 번대왓이라는 곳으로 주민회의에서 마을의 번영을 추구하는 뜻을 살려 번대동이라 정하였고 ,1964년 행정당국의 재가를 얻어 하귀2리로 편입되었다.

역대이장 명단

역대이장

성 명

재임기간

김붕수

1913~1919

강중옥

1920~1922

고형희

1923~1924

고창주

1925~1934

고창옥

1935~1936

문기택

1937~1940

조자운

1940~1942

고창옥

1942~1945

강시중

1946~1947

강봉희

1947~1948

고무석

1949~1950

문기택

1949~1950

김정팔

1950~1951

전기섭

1951~1951

배재후

1951~1952

고상규

1952~1952

김용상

1952~1953

김병표

1953~1953

배두평

1953~1954

김정팔

1954~1955

고정박

1955~1956

김용탁

1956~1957

김용호

1957~1959

문평룡

1959~1961

김봉주

1961~1962

강두선

1963.1.19~1964.4.1

강일선

1964.4.1~1965.6.11

강두선

1965.6.11~1968.3.31

강문규

1968.4.1~1970.2.19

고방일

1970.2.20~1972.6.2

조재익

1972.6.2~1975.1.21

고창선

1975.1.21~1979.2.1

김봉우

1979.2.1 (직대),1979.2.23~1981.1.25

강시현

1981.4.25(직대),1981.5.8~198.3.2.23

고근혁

1983.2.23(직대),1983.3.11~1985.1.21

문정언

1985.1.21(직대),1985.4.2~1987.2.28

1999.11.4~1999.12.8(직대)

고삼웅

1987.2.28(직대),1987.3.24~1989.2.28

김학중

1989.2.28(직대),1987.3.24~1989.2.28

강덕문

1991.1.9(직대),1991.1.31~1993.1.5

강치흠

1993~1994

강대신

1995~1996

김용진

1997.1~1998.12.31

고승립

1999.1.~1999.11

홍석반

1999.12~2000.12

이경성

2001.1.4~2003.1.7

윤영배

2003.01.7~2006.12.31

강승철

2007.01.01~2011.2.28

박지홍

2011.3.1~ 2012.12.31

강순민 2013. 1. 13 ~ 2014.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