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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목사 신처강

성명
신처강 (辛處康)
본관(출신)
생존기간
9999 ~ 9999
인물상세정보
조선조 세종때의 제주목사. 1441년(세종 23) 10월에 정간(丁艮)의 후임으로 도임하고 1443년 12월,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전출되어 떠났다. 당시 제주판관은 진자평(陣自平), 박제함(朴悌喊) 등이었다. 「왕조실록」에 의하면 1441년 8월 제주목사 신처강이 하직하니 제주에 가서 농상(農桑)을 권장하고 의창(義倉)을 염산(殮散)함은 수령의 선무이고, 또 제주는 축산을 목양함이 더욱 급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듬해 7월에 제주경차관 이명겸(李鳴謙 : 후일의 제주목사)의 계본(啓本)에 의해 신˙구 목장에 모두 경작을 금지 한다면 백성의 생계가 염려되니 구목장은 경작하도록 하였다. 목사 신처강의 장계로 현성(縣城)의 이설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442년 1월 병조의 이문(移文)에 정의현 성내에는 천맥(泉脈)이 없고 성남 쪽에 내가 있어서 물이 마르지 않으니 성을 용출하는데 수원이 무궁하고 적이 엿볼 수 없으니 성을 이곳으로 옮길 만하다가 하였다. 또 읍성의 동쪽 16리쯤의 감산(柑山)리는 동남쪽으로 높은산이 있어 성중을 두루기는 하지만 샘물이 용출하여 물이 마르지 않으니 이 곳에도 성을 옮길 만하다고 하였다. 또 김녕방호소 동쪽에 우도(牛島)가 있어 육지와의 거리가 30여리이고, 또 명월 방호소 서족에 죽도(竹島)가 있어 육지와의 거리가 20여리이다. 모두 적선이 침입하는 길이다. 서귀방호소는 두 현에서 멀리 있어 적선이 들어올 위험한 곳이다. 이 세 곳은 축성하여 방어(防禦)하도록 계청했다.
참고문헌
선생안(先生案), 관풍안(觀風案), 관안(官案), 왕조실록(王朝實錄), 이조실록
기타

 

담당부서
문화체육대외협력국 문화정책과
담당자
고혜정
연락처
064-710-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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