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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목사 심영석

성명
심영석 (沈英錫)
본관(출신)
청송(靑松)
생존기간
1567 ~ 9999
인물상세정보
조선후기의 문신 문신, 순조 때의 제주목사. 자는 군실(君實)이고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1800년(정조 24) 문과 정시(庭試)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826년(순조26)6월, 임성고(任聖皐)의 후임으로 제주도에 도임하고 1827년 8월에 파직되어 떠났다. 당시의 제주판관은 이필술(李必述)이며 정의현감은 강연(康延), 대정현감은 김재호(金在浩)와 박상율(朴尙律)이다. 제주항교에「심사상영석이건향교비(沈使相英錫移建鄕校碑)」가 귀일면(貴日面)과 엄장면(嚴莊面)에 의해 건립되었다. 현재 자연사박물관 구내로 옮겨져 있다. 1826년 가을, 도민이 징납(徵納)하는 땔감과 숯을 절반으로 감면해 주고 본전(本錢)을 설정,주사(州司)에 소속시켜 쓰도록 하여 그에 대한 추사비(追思碑)가 세워졌다. 이 해 겨울 주리(州吏) 현명원(玄明圓) 등이 난을 꾸면 이방(吏房) 김낙현(金洛鉉)을 시기하여 목졸라 죽였다. 이 일이 보고되자 현명원 등 관련자들을 먼 곳으로 유배시켰다. 또 문묘 기지가 광양(光陽) 땅에 있어 사면으로부터 바람을 받아 부적하다고 보고 이를 계청, 향교를 이설하려 했으나 파직을 당한 관계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후임 목사인 이행교(李行敎)가 1828년에 향교를 현재의 용담(龍潭)으로 이설하였다. 심영석이 지은「신향교이건상량문(新鄕校移健上糧文)」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편 1831년(순조 31) 8월에 경기도 양주목사로 부임하여 1년1개월 동안 재임한 바 있다.
참고문헌
관풍안(觀風案), 관안(官案), 왕조실록(王朝實錄), 조선인명사서(朝鮮人名辭書),국조방목(國朝訪目), 증보탐라지(增補耽羅誌)
기타

 

담당부서
문화체육대외협력국 문화정책과
담당자
고혜정
연락처
064-710-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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