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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항일운동 부병준

성명
부병준 (夫丙準)
본관(출신)
제주
생존기간
1906 ~ 1950
인물상세정보
서울에서의 학생 전위동맹(前衛同盟)과 "제주도 혁명적 농민조합 준비위원회"의 항일 활동. 가명 부건(夫鍵), 호는 백도, 본관은 제주, 한학자 부정규(夫正奎)의 3남으로 조천읍 북촌리 603번지에서 태어나 11세 때 김녕리의 한월계(韓月桂)와 결혼했으나 신식교육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역시 항일 운동가 부기준(夫己準)의 형이다. 큰형 성준과 둘째형 봉준은 한학을 하였으며 동생 기준은 배제고보를 다녔다. 1923년 3월 화북(禾北)사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 3학년에서 중퇴하였다.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전문부 경제학과에 입학, 민족주의에 눈을 떠 1년 후 서울로 돌아와 1928년 3월 조선 청년총동맹 중앙청년동맹의 서무부원으로, 또 학생부를 담당하였으며, 또 동 동맹의 집행위원으로 뽑혔다. 이후 휘문(徽文), 배재(培材), 중앙학교의 야체이카를 조직하게 하고 서울에서 반일(反日) 운동을 확산하였다. 한편 학생전위대(前衛隊)의 김순희(金淳熙:중앙고보 4년, 남원리), 송건호(宋健鎬:양정고보 4년, 함덕) 등의 항일 운동에 연관되어 구금되었으나 송건호는 면소(免訴), 부병준은 1929년 11월 광주(光州) 학생운동이 일어나자 독립 운동의 호기(好機)로 보고 중앙 청년동맹에서 파견되어 진상 조사위원으로 현지에 내려와 맹휴(盟休)를 지휘하였다. 이로써 광주경찰서에 검거되고 1930년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 면소(免訴)로 풀려나자 귀향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1933년 2월 상순 김일준(金日準)의 권유로 비밀 결사인 "신좌(新左)면 혁명적 농민조합 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김일준이 책임자가 되고 그는 고향 북촌, 구좌면 동복(東福), 김녕, 월정(月汀) 지구를 담당하여 월정리의 신창진(愼昌珍)을 동지로 맞이했다. 북촌마을의 향사인 신성회관이 노후하여 해방 직후 해체하고 보니 태극기가 나타났으니 이것으로 보아 일제 당시의 부병준 등의 항일운동과 애국애족의 발자취가 아닌가 본다. 1933년 7월 함덕리 산업조합 사무소에서 부생종ㆍ김원근 등과 함께 3인이 모여서 김일준의 사회로 해안에 등대를 설치하여 야간 항해의 편의를 도모함으로써 어민을 산하에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일동이 쾌히 승낙하므로 그 시설을 김원근에 일임하여 이를 설치하였다. 1933년 7월 하순 부병준의 집 점포에서 '이미 면 협의회원 등에서 문제시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면장에게 직접 질문하여 비리를 폭로하여 농민의 이익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일동의 동의를 얻어 진상을 규명한 후 면장과 질의전을 벌이자고 제의하자 부생종이 동의하였지만 부병준은 이에 반대하였다. 또 임야세ㆍ축산조합비ㆍ농회비 등의 관제 조합비는 농민을 착취하는 것이므로 이를 납부하지 말도록 농민 대중에게 전파할 것을 협의 결정하여 해산하였다. 한편, 그는 부생종과 함께 향동회(鄕同會)ㆍ민풍(民風)진흥회 결성을 주도하고 1933년 3월 독서회를 조직, 또 야학소(夜學所)를 개설하여 항일 정신을 고취시켰다. 특히 민풍진홍회와 향동회(鄕同會) 같은 농민 집단에 들어가 그들의 의견을 들어 투쟁과정을 통해 동지 획득에 노력할 뿐만 아니라 지방의 독서회 지도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와 같이 한림면, 조천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은 1934년 10월 제주경찰서에 의해서 62명이 입건되고 52명이 검거되었다. 고문에 의해 1명이 사망되고 35명은 기소 유예처분, 10명은 소재불명으로 기소 중지되고 부병준 등 16명만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이로써 그는 1934년 8월에 검거되어 1937년 4월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복역 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장사를 하며 전전하던 중 조국의 해방을 맞이하여 서울로 옮겨 충무로에 있는 제주문화협회 재일 교포 연락 사무의 일을 맡았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재일본 조선인연맹(약칭:朝聯) 대표로 참석하였다. 즉 1946년 남한 좌익계의 5개 정당과 40여 개의 사회 단체 대표 약 500명이 참가하여 동년 2월 15일 조선민주주의 민족전선(약칭:民戰)을 서울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결성 대회를 개최하였다. 재일(在日) 조련(朝聯)에서는 서울위원회 소속 10명 가운데 고순흠(順欽)과 부병준이 제주인으로 정식 참석하고 일본에서 특별 사절단 11명을 파견할 때 제주인으로 송성철(宋性徹)이 참가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을, 또 1990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자료출처 : 김찬흡 (북제주문화원 원장)
기타

 

담당부서
문화체육대외협력국 문화정책과
담당자
고혜정
연락처
064-710-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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