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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항일운동 부춘화

성명
부춘화 (夫春花)
본관(출신)
제주
생존기간
1908 ~ 1995
인물상세정보
구좌 동부 지구의 해녀 항일 운동. 제주의 해녀, 하도리 청년회의 부녀부장, 본관은 제주, 구좌읍 하도리 1411번지에서 부원돈(夫元敦)의 장녀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해녀 활동을 하고 1923년 하도 사립보통학교의 야학부(夜學部)에 들어가 기초 교육을 받으며 하도 부녀회(下道婦女會) 회장을 역임하였다. 1928년 제주 해녀조합 산하 구좌 해녀조합의 대표로 선출되어 1931년 구좌 동부지구에서 일어난 해녀 항일 운동을 주도하면서 1932년 1월 7일 제주도사(島司) 다구치데이키(田口禎熹)에게 9개 항의 요구 사항을 전달하였다. 부춘화 해녀 항쟁의 주동자 부춘화ㆍ김옥연ㆍ부덕량 등을 비롯한 많은 해녀들과 연결하여 비밀 결사 "혁우동맹(革友同盟)의 제주도 야체이카사건에 대한 검거 선풍이 불게 되었다. '1931년 5월 농민들은 당의 호소에 따라 "농회(農會)"를 비롯한 각종 관제 조합에 반대하여 농민들의 자주 조직으로서 농민회 조직에 착수했다. 또한 해녀들은 착취 기관인 "어업조합"에 반대하여 자기들의 자주적인 결집체로서 해녀회를 만들고 단결하게 되었다. 농민회는 중문면을 비롯한 각면에 여러 가지 형태로 조직되었다. 해녀회는 특히 해녀가 많은 성산면, 구좌면 지대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그 중에서도 하도리, 종달리, 연평리, 세화리 등의 지역에서 가장 발전했다. 이와 같은 조직적인 대중 운동 속에서 당조직이 성장하고 특히 구좌면 지역에서 당의 중핵적 조직으로서의 혁우동맹이 가장 성장하여 그 조직 인원은 전도에 걸쳐 12명에 달했다. 이러한 해녀의 생존권 투쟁은 동료 김옥련(金玉蓮:하도), 부덕량(夫德良) 등 3인을 정점으로 세화(細花)에 해녀들을 집결시켜 시위 운동을 전개, 동년 1월 16일 일제 당국에 의해 주동 해녀 20여 명이 체포당하였다. 조사 끝에 그는 김옥련과 함께 목포(木浦) 유치장으로 구인(拘引)되어 광주지법 제주지청에서 소요죄(搔擾罪)로 6개월에 집행 유예를 선고받아 미결 기간 6개월 동안 수감되었다. 여공(女工)으로 일하던 중 귀향, 동년 겨울 세화리의 고한일(漢一)과 결혼하고 함께 일본 오사카(大阪)으로 건너가 재일(在日) 오사카 여성 교포들을 계몽하는 데 앞장섰다. 1945년 광복 후 귀국하여 부산(釜山)에서 상업에 종사한 바 있다. 1995년 3월 24일 향년 88세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3년 광복절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자료출처 : 김찬흡 (북제주문화원 원장)
기타

 

담당부서
문화체육대외협력국 문화정책과
담당자
고혜정
연락처
064-710-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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