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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항일운동 강창보

성명
강창보 (姜昌輔)
본관(출신)
진주
생존기간
1902 ~ 1945
인물상세정보
신인회ㆍ신간회ㆍ조선공산당의 항일 활동. 본관은 진주, 강제원(姜齊元)의 장남으로 산북 용담리 69번지에서 태어나 어릴 때에 심재(心齋) 김석익(金錫翼) 문하에서 한문을 배웠다. 향학열에 불타 상경하여 청년회관 및 사립 중동(中東)학교에서 중등 과정을 수학(修學)하였다. 1919년의 3ㆍ1 운동에 자극되어 제주도내 신진 엘리트들에 의해 1921년 반역자구락부를 비밀리 조직할 때 창립 멤버로 항일 청소년 활동을 시작하고, 1923년 소년선봉대를 조직하여 그 지도에 임하였다. 또 1925년 3월 11일 제주시내 급진적인 청년들에 의해서 신인회(新人會)를 조직할 때 교양부 간사로 강창보와 송종현이 이를 담당하였다. 이는 본도 최초의 사상 단체로 그 강령이 '무산자를 본위로 신사회의 건설'을 표방하였는데 일제는 이 강령이 불온하다고 하여 동년 4월 17일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이 일로 동년 9월 동지 김택수(金澤銖:일도), 송종현(宋鍾炫:신촌)과 함께 징역 6개월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소년선봉회 집행위원으로 제주소년연맹의 집행위원, 또 청년동맹에 가입하여 간부로 활동하였다. 이 무렵 강창보는 송종현, 김택수, 장종식(張鍾植), 김병원(金炳媛), 오대진(吳大進), 김정로(金正魯), 윤석원(尹錫沅)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 세포로 활동하고 1927년 8월 송종현의 권유로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이들은 제주에서의 첫 공산주의 항일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특히 송종현에 의해 동지가 규합되는 계기가 이루어졌다. 실은 한국에서 1925년의 조선공산당 창건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 운동이건 사회주의 운동이건 자산층(資産層)에 속하는 민족 인텔리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제주도내에 있어서도 초기 공산주의 운동자들은 거의 가정이 부유층ㆍ지식층에 속하고 그런 환경에서 성장한 신진 엘리트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항일 민족해방운동의 한 방편으로 이 길을 택하였다는 데 유념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무산자가 자본가를 타도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제주도는 지주나 자본가가 형성된 그런 사회가 아니었음을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1928년 9월 제주청년연합회 서무부 상무 위원 및 집행 위원이 되었으며 동년 8월 26일 제4차 조선공산당 재건사건으로 경기도경찰부에 의해 검거되어 1930년 12월 22일 경성지법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아 미결기간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1년 1월 출옥된 후 제주에서 당(黨) 재건운동을 비밀리에 진행하였다. 이익우(李益雨:한림), 신재홍(申才弘:우도), 오대진(吳大進:모슬포) 등 급진적인 항일 동지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동년 9월에는 세금 불납운동, 묘목 강제배포 반대운동 등 농민 운동을 지도하고 동년 11월부터는 세 차례에 걸쳐 해녀의 항일 투쟁을 지도하였다. 1932년 5월 제주도야체이카 책임자로 검거되었으나 제주경찰서 유치장에서 탈출, 거지ㆍ엿장수ㆍ미치광이 등으로 변신하여 도피 생활하던 중 강병희(姜炳喜)의 기지로 짐짝 속에 감추어져 복목환(伏木丸) 편에 의해 무사히 일본 오사카로 탈출하였다. 강병희는 산북 삼양(三陽)리 태생으로 건입(健入)리에서 동아통항(東亞通航)조합 제주도출장소장으로 일하며, 제주와 오사카(大阪)의 정기여객선 복목환(伏木丸)에 관계하고 있었다. 항일운동가 강창보(姜昌輔:31)는 해녀 항일 운동의 후견 단체 혁우동맹(革友同盟)의 실제적인 지도자로 지목되어 1932년 5월 2일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어 있었다. 마침 5월 6일 오전 2시경 유치장을 탈출하는데 성공, 서귀포 이도백(李道伯)의 집에 은신 중이었다. 친구 강병희는 5월 21일 오후 7시경 산남 서귀포에서 몰래 강창보를 만나 탈출 요청을 받아 이날 오후 10시경 서귀포항 방파제(防波堤) 근처에서 빈 가마니 속에 강창보를 숨기고 끈으로 묶어 "복목환 김일성(金一成)"이라고 적어 한 개의 해산물 짐짝같이 포장하였다. 일본 순경은 짐짝을 검사하면서도 이를 발견 못하고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고 한다. 이는 자기가 복목환 제주취급소 책임자임을 기화로 은닉할 수 있었다. 동 선원 한숙도(韓淑度) 외 2명에게 이를 인도하여 5월 26일 일본 오사카(大阪)항으로 상륙하게 하여 도주시켰다. 후일 이 일이 탄로되어 강병희는 구속되고 1932년 9월 15일 광주지법 제주지청에서 유죄판결을 받자 공소 신청, 1932년 10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법 제 103조에 의하여 징역 8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당시의 증언에 의하면 재판장이 준엄하게 꾸짖자 '재판장께서는 친구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까! 진정한 우정은 친구가 곤경에 처할 때 자기 몸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친구 강창보군의 어려운 처지를 도와준 데 대하여 조금도 후회가 없습니다. 응당 상응한 처벌은 이미 각오했습니다.'라고 하니 재판장은 말문이 막혔다고 전한다. 탈출한 강창보는 몰래 도쿄에 들어가 송성철(宋性徹), 김여환(金麗煥) 등과 비밀 접촉, 일본공산당과 연계하여 전일본 노동조합 전국협의회(全協) 토건노조의 노동운동에 참가하면서 「조선신문」 발간을 지도하였다. 한편,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개시, 운동의 근거지를 흥남(興南)의 조선 질소비료 공장, 고주파(高周波) 공장, 국경 철도, 세관(稅關) 등 주요 공장과 기관 노동자에 대해 오르구 침투 공작을 진행하였다. 1943년 국내 잠입을 기도하던 중 동년 4월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대전(大田)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1945년 1월 7일 오전 10시 30분 옥중 순국(獄中殉國)하였다. 해방을 몇 달 남겨 두고 파란만장한 혁명가의 생애를 마감하자 스승 김석익(金錫翼)은 「제강창보문(祭姜昌輔文:강창보를 제사하는 글」을 지었다. 그 글 일부에 '身作獄中之魂而父母妻子 又從以散亡流離已矣乎 天耶人耶 是孰使之然哉兮 其必曰 "我自取之又何悲"嗚呼 天飜而地覆兮 此心之憤 其誰知之' 즉 '몸은 옥중의 혼이 되고 부모 처자는 따로 흩어졌네. 이게 하늘이 한 일인가! 사람이 한 짓인가! 뉘가 그로 하여금 이렇게 되게 하였소. 그는 바로 "내 스스로 그 길은 취했습니다. 어찌 슬퍼하십니까."라고, 아! 하늘이 꺼지고 땅이 뒤덮이네! 이 분통한 마음 그 뉘 알아주리!' 강창보는 김문준(金文準), 김시용(金時容) 등과 함께 공산주의자로 민족 해방운동에 기꺼이 몸을 던졌던 제주가 낳은 삼대거목(三大巨木)이다. 조국이 해방되자 강창보를 살리려던 강병희는 1946년 1월 "서울 조련(朝聯) 연락위원"의 상무일을 맡게 되었다. 이는 재일 조선인연맹 부위원장 김민화(金民化:조천) 등 4명이 귀국하여 조직한 것이다. 또 강병희는 일제의 경찰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았던 한을 품고 제주 출신 총독부 고등경찰 김석묵(金錫黙)을 돌로 쳐서 죽였다고 전한다. 김은 일본식 이름으로 시바다겐지(柴田健次)라 하여 우리 애국 지사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하였는데 특히 조선어학회 사건 때에 악명(惡名)이 높았다. 강병희도 1958년 북한에서 죽었다고 전한다. 1980년 산북 영평(寧坪)리 소재 양로원에서 강창보의 부인 김윤성(金允聲:도두)이 이승을 뜨니 누구 한 사람 이 노인이 위대한 혁명가의 아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강창보의 아우 강창거(姜昌擧)는 일본에서 71세의 노구로 형수의 소식이나 들었는지! 강창거도 형의 영향을 받아 1925년 4월 제주농업학교 항일운동으로 동맹휴학을 주도한 바 있으며 1932년 9월 고려공산청년회 사건으로 2년 6개월에 걸쳐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항일 투사이다. 만일 형수의 부음(訃音)을 들었다고 한들 당시 조국은 살벌하고 차가운 시절이라 맞아드리기에는 인색하였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5년 3ㆍ1절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자료출처 : 김찬흡 (북제주문화원 원장)
기타

 

담당부서
문화체육대외협력국 문화정책과
담당자
고혜정
연락처
064-710-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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