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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항일운동 채순병

성명
채순병 (蔡順秉)
본관(출신)
평강(平康)
생존기간
1903 ~ 9999
인물상세정보
기미년 3ㆍ1 독립만세 당시 학생의 항일 활동. 본관은 평강(平康)이며 채수용(蔡洙鎔)의 아들로 제주시 일도리 1358번지에서 태어났다. 원적은 전남 함평(咸平)군 함평면 함평리 171번지인데 한말에 백부 채수강(蔡洙康)이 본도 정의군수로 부임할 때 채수용도 함께 제주로 이적(移籍)하였다. 부친 채수용은 민족주의자로서 1926년 제주공립농업학교 항일 동맹휴학 당시에 장용견(張容堅), 홍순녕(洪淳寧)과 함께 맹휴(盟休) 수습 실행위원으로 뽑혀 문제를 해결하였다. 1919년 당시 서울 안국동(安國洞) 69번지 박태병 댁에서 김종현(金宗鉉:전북 익산), 최강윤(崔康潤:전남 함평) 등과 함께 하숙하면서 사립 국어보급학관 고등과 학생으로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동년 3월 4일 밤 서울학생관 주관으로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려고 자기 하숙방에서 '내일 오전 8시 30분 남대문역 역전에서 제2차 독립 만세 운동이 개최되니 태극기를 가지고 나오라'는 내용의 격문 약 400매를 만들어 동지 3명과 함께 중학동(中學洞)을 비롯 인근 각 동에 배포하였다. 주민을 동원, 다음 날 남대문 역전에 모인 수백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조선 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휘날리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벌이다가 매일신보사 앞에서 일경에 체포되었다. 당시 제주 출신으로 서울의 만세 운동에 참가한 학생은 채순병을 비롯해 경성보고 2년생 박규훈(朴圭壎)과 동교 4년생 김성숙(金成淑), 그리고 경성여고보(京城女高普)의 여학생 최정숙(崔貞淑) 등이 활약하였다. 채순병은 동년 11월 6일 경성(京城) 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불복 항소, 1920년 2월 27일 경성 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미결 기간을 포함하여 1년 3개월이나 옥고를 치렀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수감 중 1920년 5월 14일 가출옥(仮出獄)하자 전남 강진(康津)에 사는 양부 채수강 댁에서 휴양하게 되었다. 1922년 학업을 계속하려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요시찰인(要視察人)으로 지목되어 일본 경시청(警視廳)의 감시와 미행을 받기가 일쑤였으며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요절(夭折)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광복절을 기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자료출처 : 김찬흡 (북제주문화원 원장)
기타

 

담당부서
문화체육대외협력국 문화정책과
담당자
고혜정
연락처
064-710-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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