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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항일운동 한원택

성명
한원택 (韓遠澤)
본관(출신)
청주
생존기간
1911 ~ 1935
인물상세정보
제주 혁우동맹과 야체이카의 항일 활동, 본관은 청주, 구좌면 종달(終達)리 태생이다. 혁우동맹원들은 당시 구좌면 지역의 현안이었던 제주도 해녀 어업조합의 해녀 수탈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즉, 1930년 9월 20일에는 구좌읍 세화리 김시화(金時和)의 방에서 신재홍(申才弘)ㆍ오문규(吳文奎)ㆍ김순종(金順鍾)ㆍ김시곤(金時坤)ㆍ한향택(韓香澤) 등이 집결하여 농촌의 청년과 해녀를 포섭하고 하는 방법에 대해 협의하였다. 그리고 1930년 10월에는 신재홍(申才弘), 한원택(韓遠澤), 채재오(蔡載五) 등이 모여서 당시 발생하였던 성산포 해녀사건의 문제점을 비판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해녀 문제는 해녀들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유도할 것을 협의하였다. 또한 혁우동맹원 신재홍, 문도배, 강관순, 김순종, 김시곤 등은 1930년 11월 초순에 모여서 향후 사회운동의 방법에 대한 협의를 하기도 하였다. 제주 청년동맹 중심의 합법적 활동에서 일제의 탄압에 직면하자 지하 조직 운동으로 전환, 새로운 청년 운동가로 변신하기 위해 이무렵 신재홍(申才弘:구좌)ㆍ김한정(金漢貞:대정)ㆍ홍관아(洪寬兒:일명 淳日, 제주읍)ㆍ김민화(金珉華:조천)ㆍ한향택(韓香澤:구좌)ㆍ장종식(張鍾植:제주읍)ㆍ김석송(金石松) 등이 용담(龍潭)리의 하천에서 모여 "제주도 사회운동자 간담회"를 개최 제주도의 동부는 신재홍, 서부는 장종식이 분담. 소년 소녀에 편중된 운동 노선을 수정하여 청년 대중을 위주로 하는 운동 방법으로 전환하였다. 또 신재홍이 구좌의 책임자로서 1931년 11월 종달리 한향택을 제주도 야체이카의 당외분자로 가입시키고 또 한향택ㆍ신재홍 주도 아래 채재오(蔡載五)ㆍ한원택(韓遠澤)ㆍ고사만(仕萬) 등과 같이 종달리 농민조합 창립총회를 개최하기로 협의, 참석 농민 수 10명에게 '농민의 피를 짜는 악질 조합 반대, 종묘(種苗) 강매 반대, 무상 부역 반대, 농민 대중의 이익에 배치되는 면행정(面行政) 반대' 등의 표어로 농민의 항일 정신을 의식화하였다. 제주도 구좌면 세화리에서 해녀 항일 운동이 일어나 제주경찰서에서는 세화리, 하도리, 종달리, 연평리를 중심으로 남녀 근 백 명을 검속하여 엄중한 취조를 한 후 일부는 석방하고 일부는 민중 운동자협의회(民衆運動者協議會)라는 비밀 결사를 통하여 해녀 항쟁을 배후에서 책동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4차 조선공산당사건으로 검거되었던 강창보(姜昌輔)가 감옥에서 나오자 신재홍(申才弘), 오대진(吳大進) 등이 1931년 11월경 제주도 해녀 어업조합에서 지정 판매제를 실시하여 오던 바 제주도 구좌면 하도리 해녀들이 해녀조합에 대하여 「감태재」, 「생전복」 판매에 관한 5개 조의 요구 조건을 걸고 반항한 바 있었다. 그 후 조합측과 해녀간에 말썽이 계속되어 오던 중 1932년 1월 7일 하도리에 산재한 해녀 3백여 명은 그들의 호미와 빗창을 들고 어깨에는 양식 봇다리를 매고 하도리에서 항일운동을 일으켰다. 세화 장터까지 오던 도중 경찰관의 제지도 물리치고, 세화리 해녀들과 호응하여 일층 기세를 높여 장을 보러 온 수천 군중 속에서 해녀조합(海女組合)에 대한 불평을 군중에게 토론한 후 그곳을 떠나 해녀조합(海女組合) 본부를 습격하고자 행진하던 도중에 당국의 제지로 해산한 일도 있었다. 해녀(海女)들은 다시금 1월 13일 구좌면과 성산면 6개 동리에서 천여 명의 해녀(海女)들이 모여서 제2차 저항 운동을 일으켰다. 때마침 순시하던 제주도사(濟州島司)를 포위하고 해녀조합(海女組合)에 대한 지정 판매와 10여 개 조건을 들어 진정하고자 하였다. 경관들이 제지하자 만세를 고창하면서 항일 운동을 일으키므로, 제주경찰서에서는 각 주재소 경관들을 비상 소집, 무장 경관대를 편성한 후 현장에 급행하게 하여 일거에 남녀 백여 명을 검거하였다. 1932년 1월부터 수 차례에 걸쳐 일어난 항일 투쟁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었으며 동년 3월, 이 일이 탄로되어 배후 인물로 지목된 종달리의 야체이카 회원 8명이 피검(被檢)되었다. 이들의 면모를 보면 한향택을 비롯해 한기택(韓基澤), 한원택(韓遠澤), 한영택(韓榮澤), 채재오(蔡載五), 강태일(康泰一), 고사만(仕萬), 강종달(康宗達) 등이다. 이들 가운데 한향택, 한원택, 고사만, 채재오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한영택(韓榮澤)은 무죄로 풀려났다. 한원택은 1933년 2월 28일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구형에 징역 1년 언도를 선고받아 미결기간 옥고를 치렀다. 고문과 옥고로 몸이 피폐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출옥 후 2년만에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자료출처 : 김찬흡 (북제주문화원 원장)
기타

 

담당부서
문화체육대외협력국 문화정책과
담당자
고혜정
연락처
064-710-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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