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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소개

531여가구에 1298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고성1리는 제주시에서 12km지점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써 본동과 보로미마을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중산간마을입니다. 인근에 위치한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우리 민족의 외세 침략에 대항한 민족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 삼별초군이 과녁삼아 활을 쏘았다는 '살맞은 돌'은 삼별초군의 용맹함을 보여주고 있어 제주인의 역사의식이 숨어있는 마을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주소득원은 감귤이며, 착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마을 주민들은 소박하면서도 위로는 효를 행하고 아래로는 효의 근본이 되어 마을을 이끌어 나가는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마을위치

고성1리는 동경 126。25。00。。, 북위 33。27。18。。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시 애월읍의 동남쪽에 위치한 총면적 약 910ha의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고성1리 마을회관을 기점으로 동쪽은 광령 1리(약2.2Km), 서쪽은 장전리(약2.5Km), 북쪽은 상귀리(약 2.0Km)가 위치하고 있으며 남으로는 한라산 줄기까지 뻗어있다. 그리고 제주시내까지의 거리는 약 12Km이고 일주도로까지의 거리는 약 3.3Km이다.

일반현황

인구현황
세대수 인구수 비고
694 1,692 831 861  

자연환경

地 形(지 형)

한라산맥이 서북으로 날개를 뻗어 내려와 노루봉(속칭 노리오름)을 낳았다. 노루봉이 다시 동북으로 30여리를 뻗어 광활한 목장지대(5소장)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 고성공동목장이 있고 우뚝 솟은 산심봉이 고성리를 지킨다.
고성공동목장에서 북으로 내려와 산업도로에 이르면 고성2리가 형성되어 있고 조금 더 내려오면 안오름이 인자한 모습으로 고성리를 포근히 감싸주어 마을은 늘 평화롭고 화목하다. 본리는 동으로 진군로를, 남으로 안오름, 서쪽으로 성동산, 북쪽으로는 던덕모를로 둘러 싸인 분지의 형태를 이룬다.
고성1리 본리는 해발 120m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성2리는해발 300m, 택지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보르미는 해발 110m이다. 고성천은 산심봉 서쪽 움부리에서 발원하여 산업도로 남쪽 가시나물 동산을 지나 웃작지소에 이르면 폭포수를 이루며 내려와 고성리 부락 중앙을 가로질러 흐른다. 고성천의 바닥은 현무암층으로 형성되어 평상시에는 물이 흐르지 않고 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乾川(건천)이다. 고성리에는 여러곳(구시물, 오성물, 종내미, 거제비, 장수물)에서 용천수가 솟아나 상수도가 공급되기 이전에 오랫동안 생활용수로 이용되었다. 특히 가뭄이 심할 때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인근 부락에서까지 이용하였다.

氣 候(기 후)

고성리는 행정구역상으로 제주시 경계에서 약 3K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독립된 기상관측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고성리의 실정으로는 濟州測候所(제주측후소)의 제주시 지역 기상자료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제주시 지역과 경도, 위도상에 별 차가 없는 고성리는 이 자료로써 큰 오차가 없을 것으로 추정되며, 일반적인 제주도 기후특색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겠다.
최근 6년가 연평균 기온은 15.4。C이며 1월의 평균 기온은 5.0。C, 8월의 평균 기온은 28.2。C이다. 강수량은 연평균(1985∼1990) 1,685mm로 우리나라에서는 다우지역에 속하며, 10월부터 4월까지는 乾期(건기), 5월에서 9월까지는 雨氣(우기)로 연간 강수량의 65%가 이 시기에 내린다.
봄은 한랭건조한 대륙성 고기압(시베리아 고기압)이 점차 쇠약해지고 대륙성 저기압이 종종 남하하게 되므로 晴曇相半(청담상반)의 날씨가 많고 바람도 비교적 강한 편이다. 후반기에 이르러 아열대성 전선이 상승하므로 강우일수가 증가하게 된다.
여름에는 한랭다습한 오호츠크 기단과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기단이 충돌하면서 서서히 장마권에 진입하게 된다. 때로는 제트기류가 남하하여 폭우가 발생하기도 하며 오호츠크 기단이 강화되면 가뭄이 발생한다. 후반기에는 열대성 저기압(태풍)이 내습하여 연평균 2∼3회 태풍의 영향권에 들기도 한다.
가을에는 한랭건조한 대륙성 기단이 성장하여 영향을 줌으로써 북서풍이 강화되고 청천일수도 증가하여 청명한 날씨가 계속되어 가을이 비교적 길다.
겨울은 한랭건조한 대륙성 고기압이 지배하게 되나 동지나해상에 저기압이 자주 발생하게 되어 일조율이 감소하고 우천일수가 증가하게 된다.

人口(인구)와 聚落(취락)

고성1리는 본리와 보로미로 나눠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예로부터 사람이 사는 곳에는 물이 필요하고 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모여 산다는 말이 있듯이 본리 주변에는 구시물을 비롯하여 5곳(구시물, 오성물, 종내미, 거제비, 장수물)에 샘물이 솟아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고 고성2리(옛 양잠단지)는 1967년부터 촌락이 형성되었다.

生活 環境(생활 환경)

고성1리의 생활환경은 1970년대화 1980년대를 거치면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생활권은 과거에는 下貴(하귀) 등 부락 주변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에는 제주시까지 확대 되었다. 1970년 이전까지는 식수는 주로 구시물을 이용하여 왔으나 1970년 3월 공동수도가 공급되기 시작하였고 1972년부터는 가정용 수도가 공급됨으로써 「물허벅」이 사자지게 되었다. 1989년에는 「강석이 왓」에 지하수를 개발하여 식수 및 농업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중산간 도로변에 위치한 고성1리는 1967년부터 제주시-한라간 시외버스가 개통되었고 1973년에는 시내버스 노선이 개설됨으로써 제주시 생활권이 되었다. 이에따라 1973년 고성-하귀간 도로가 확장되어 1977년 포장되었고, 1980년에는 중산간 도로가 1960년대에 이어 2차 확장되어 1981년에 포장이 완료 되었다. 1992년에는 고성-산업도로간 도로가 확장·포장되어 교통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사회 변천에 따라 과거에는 대중교통 수단에 의존하여 왔으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점차 승용차 보유대수가 증가하는 등 그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1970년대 이래 주택 개량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져 주거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으며 1986년 보건진료소가 개설되어 리민들의 건강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고성1리의 초등학교, 중학교 학구는 하귀학구에 속해 있으며 유치원, 유아원은 하귀와 광령등에 많이 就院(취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등학교는 주로 제주시 소재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있으나 일부는 한림읍, 애월읍 소재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도 한다.

산업구조

고성1리의 산업은 주로 농업과 축산업이었다. 농업에는 주로 우마(牛馬)를 이용하여 왔으나 점차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농기계가 보급되었다. 경작지는 마을 주변이었으나 지력이 떨어져 산심봉 일대까지 올라가 개간을 하여 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그러나 화학비료의 보급과 사회 변천에 따라 근년에 이르러서는 개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재배 작물은 과거에는 주로 식량작물이었으나 사회의 변천과 더불어 경제작물 위주로 전환되어 갔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농촌이면서도 식량을 구입하여 먹는 모습으로 변하였다.
축산업은 농업 생활과 연관되어 모든 가정에 필수적으로 가축이 사육되어 왔으나 농업의 기계화와 더불얼 가축의 사육은 감소되어 가면서 기업목축으로 변하여 가는 양상이며 지금까지의 주로 우마의 사육에서 벗어나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한편 경제 생활이 넉넉해지고 관광 산업이 발달하면서 고성1리 주변에도 이러한 변화에 따른 제조업과 서어비스업 등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농업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농촌의 모습도 주곡의 생산 방식을 탈피하여 상업작물의 생산으로 전환되어 갔다. 이 과정에서 주곡이었던 보리, 조 농사가 쇠퇴하게 되고 벼농사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 되었다. 한편 상업작물로서 밀감, 마늘, 맥주맥, 콩, 키위(양다래), 참깨 등이 생산 판매되고 있다.

축산업

축산업의 양상은 점차 양계(養鷄), 양돈(養豚), 꿩사육, 젖소 및 사슴사육으로 변하여 가고 있다.
양 돈은 양원주, 문경환, 이문준, 문성칠, 고상효, 강태민 씨 등이 기업적으로 행하고 있고, 양계는 박정희 이남수, 김창국, 윤재용, 허보현 씨 등이 기업적으로 행하고 있으며 강인종, 이형수 시 등이 사슴농장, 전성옥 씨가 꿩 사육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