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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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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눌우시동산
작성자 관리자 조회 874 회

  아득한 옛날 일이었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였다. 당태자는 8년이나 거듭되는 내란과 외환으로 산동성을 피해 다른 곳으로 피난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마마, 큰일이옵니다.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으로 앞을 가리니 이 일을 어찌 하오리까?"
  신하들은 걱정이 태산같았다. 당태자만이라도 무사히 피난을 가야 훗날을 기약할텐데 그것 마저 물거품이 된다면 아무 희망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할 수 없는 일, 그냥 배를 띄워라. 한시가 급하질 않으냐?" 당태자를 태운 배는 보름동안 바다를 흘러가다 겨우 곽지리 '진모살' 동쪽에 서 있던 당태자도 허기에 지친 나머지 죽고 말았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당태자 부인이었다. 당태자 부인만이 겨우 목숨을 건져 진모살을 기어 올라왔으니 그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당태자 부인을 간호하며 슬픔을 달래고 선체가 파선당한 곳을 '당파선코지'라 불렀다. 당파선이란 당나라의 배가 부서졌다는 뜻이요, 코지란 뾰족히 드러난 곳을 이름하니 지금도 곽지리 해수욕장 동쪽에는 이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당태자라는 직위는 그 당시 우리나라로서는 감히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높은 지위였기에 비록 배는 부서져 당태자는 죽었어도 그의 무덤만큼은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여 전포(앞개)에 묻어 '당능'이라 이름지어 관리를 했다 한다.
  그 후 당태자 부인은 낯선 곳 곽지에서 살면서 남편이 묻힌 무덤을 매일 드나들며 슬피 울었다. 그 광경이 너무 가련하고 애를 끓는지라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눈물이 흘러 길을 메웠고 천근 만근 무거운 걸음은 자갈을 부셔 모래를 만들었다. 그 부인은 남편이 묻힌 동산을 넘을 때마다 울었다 하여 '늘 울며 다니는 동산'이란 뜻에서 '늘우시동산'이라 불렀다.
  이렇게 슬픔에 쌓여 지내던 당태자 부인도 더 이상의 아픔은 참지 못했는지 그만 죽고 말았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 부인의 길을 조금이라도 편히 가라는 뜻에서 대비인동산 즉 그 부인의 일편단심 높은 절개를 기리는 동산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곽지해수욕장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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