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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김천덕(金天德) 게시물 상세보기
제목 열녀 김천덕(金天德)
작성자 관리자 조회 1,066 회

  김천덕은 곽지 사람으로 사비(寺婢)였다. 그의 남편은 곽연근(郭連斤)이었는데 그는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아 연명하고 있었다. 워낙 배를 잘 다루었기에 그의 소문은 삼읍까지 퍼지게 되었다. 그래서 관청에서는 그의 배 다루는 기술을 인정하여 중국에 바칠 진상물을 실어가는 책임자로 임명하게 되었다. 진상물을 옮기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 바다에는 왜놈들의 노략질이 심하던 시절이니 웬만한 베짱이 아니면 배를 타고 머리 나가지 못할 때였다.
  "여부 있겠습니까? 하라면 해야조"
  곽연근은 자신있게 진상물 배를 타겠다고 했다.
  "과연 듣던대로 보통 인물이 아니로군"
  관청관리는 그 즉시 곽연근에게 중국에 보내는 진상물을 실어 떠나라고 했다.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진상물을 실은 배가 바다 한가운데쯤인 화탈도(化脫島) 부근에 다달았을 때 갑자기 들이닥친 풍랑으로 배는 뒤집히고 곽연근은 죽고 말았다. 김천덕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흘낮 사흘밤을 눈물로 지샜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던 김천덕은 이제나저제나 죽은 남편이 혹이나 살아 돌아올 줄 알고 기다렸다. 매년 명절때는 밥상을 차려놓고 화탈도를 향해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슬퍼했다. 그후 죄를 지어 곽지에 귀양오는 선비마다 김천덕의 미모에 반하여 그를 탐내었으나 김천덕은 말을 듣지 않았다. 오직 죽은 남편만을 지아비로 섬겼다.
  한편 명월진의 여수(旅帥)라는 이가 김천덕의 미모를 누구보다 더 탐내고 있었다. 여수는 재물을 앞세워 천덕의 부친 김청(金淸)을 설득하여 첩으로 삼으려 하였다.
  "이보게, 자네 한 번 팔자를 고치게. 죽은 사위야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질 않나? 허니 자네 딸을 내게 보내게. 그럼 호강하고 한평생 편히 지낼 게야. 자네도 함께 말일세."
  여수는 감언이설로 김청을 속여 허락을 받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안 김천덕은 아무리 부친의 명이지만 거절하고 머리를 깍고 중이 되고 말았다. 머리를 깍았지만 마음만은 아직도 죽은 남편이 살아 돌아 올 것이란 믿음에는 변함없었다. 그래서 매일 정한수 떠놓고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김천덕은 예나 다름없이 정한수를 떠놓고 화탈도를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참이었다.
  "지나가는 나그네요. 목이 마르니 물이나 한 사발 얻어먹읍시다."
  어떤 선비가 길을 가다 정한수를 뜨고 가는 김천덕을 발견하고 물을 청했다.
  '허 참, 이게 귀신이냐? 사람이냐?'
  선비는 혼이 빠졌다. 생전 그렇게 아름다운 절색의 미녀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자, 여기 있사옵니다/"
  김천덕은 막 뜬 물을 선비에게 주려다 얼른 물사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길옆에 있는 버드나무 잎사귀를 하나 다서 물위에 띄우고는 고개를 돌려 선비에게 주었다.
  "허허, 얼굴은 절세 미녀로다만 마음씨는 고약하고만 …"
  선비는 김천덕을 나무라며 후후 버드나무 잎을 불며 천천히 물을 마셨다.
  "버드나무 잎을 띄운 걸 용서하소서. 그렇게 해야 물을 천천히 마실 것이라 여겨 그랬습니다."
  김천덕은 갈증을 느낀 선비가 혹이나 물을 급히 마시다가 체하는 날이면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을까 염려하여 버드나무 잎을 띄운 것이다.
  "그런 연유를 알지 못하는 나야말로 정말 소인이로다. 과연 얼굴에 그 마음씨로다."
  선비는 김천덕의 고운 마음씨를 알고는 더욱 욕심이 생겼다.
  "자 나와 함께 사는 게 어떤고?"
  선비는 김천덕의 손을 잡고 애원했으나 듣는 체도 하지 안고 손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와 긴 줄에 목을 매고 죽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남정네들이 하나같이 자기를 탐내니 더 이상 목숨을 부지하는 건 죽은 지아비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후 임제(林悌)라는 문인이 지은 김천덕전(金天德傳)에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정조를 높이 기렸다.
  ―천덕은 남쪽 거치른 땅의 하녀일 뿐, 밭에서 김을 매며 규문지범(閨門之範)을 배운바 없으며 방직(紡織)을 업으로 하매 어찌 여훈지규(女訓之規)를 배웠으랴만 남편을 섬기고 정조를 지킴에 비상한 바가 있으니 가히 어찌 천질(天質)이 순정하여 배움을 더 다림없이 능히 성선(性腺)이 있다 아니하리오. 오호라. 세상에 이른 바 남자들은 조금만 이해로 형제와 벗들과 서로 다투고 국정이 문란해진 때와 나라가 위태로운 때에 나라를 파는 자와 어버이를 잊는 자가 얼마이던가? 천덕과 같은 열부효녀가 드므니 슬프도다―
  천덕은 선조 10년(1577) 제주 목사에 의해 열녀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그녀를 기리는 비는 지금도 마을 중심, 어머니회관 앞에 있다. 또한 '천덕의 못' 역시 곽지해수욕장 입구, 신작로 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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