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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효자 조인철(孝子 趙仁哲)
작성자 관리자 조회 529 회

     조인철(趙仁哲)은 한림읍 귀덕리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에게 욕되는 행동을 하지 아니하고 자라서는 조석으로 문안을 드리더니 돌아가신 후에도 여막(廬幕)을 지어 묘를 지키었으며 폭풍우나 뇌우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묘소에 가서 곡배(哭拜)하고 제사를 지내었다. 그는 항시 소학(小學)의 명륜편(明倫偏)을 읽으며 평생 효심이 변치 아니하였으므로 1861년(철종 12년) 마을 사람들이 천거하니 정려 복호되었다. 이 효자비는 한림읍 귀덕리에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通政孝子趙仁哲之閭(통정효자조인철지려)

     이 비석은 귀덕 1리 속칭 '너븐밧'에 위치해 있다.  1841년 4월에 세워졌으며, 비의 규모는 너비 52㎝, 높이 98㎝, 두께 20㎝이며,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비의 내용은 【공은 한양부원군 연(涓)의 13세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성품과 순수한 효심으로 어버이를 섬기는 데에 돈독하여 여름에 베개 밴 데를 부채질하여 시원하게 해 드리는 정성이나 양친의 뜻을 받들어 그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는 데에 마음과 힘을 다하였다. 돌아가심에 미처서는 망인(亡人)을 섬김이 살아 있는 사람을 섬기는 것 같이 삼가 묘소를 지키어서 바람이 사납고 번개가 칠 때에도 반드시 가서 곡을 하며 배하였다. 절기(節氣)의 차례로 때가 이르면 찬품(饌品)을 항상 배설하였고 항상 '소학(小學)'의 명륜편(明倫偏)을 읽으면서 주야로 그치지 아니했다. 사심지성(事尋之性)이 늙을수록 더욱 돈독해지니 마을 사람들이 공경하여 우러러 사모하고 이와 같은 탁이한 행실은 반드시 포양( 揚)의 은전이 있을 것이라 하여 많은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였다. 지지난 신유(辛酉. 철종 11년. 1861)에 연유를 갖추어서 본주 방어사에게 보고하니 완문(完文)이 내려졌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면 오히려 도설(棹楔)의 은전에 흠궐함이 있을 것이므로 편갈(片碣)에 새겨 적어 여기에 비각을 세우니 한 세대의 어리석은 남편들이 우러러 받들고 본받을 귀감이 될 것이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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