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지명유래

설촌 유래 게시물 상세보기
제목 설촌 유래
작성자 하귀1리 조회 911 회

하귀1리의 역사는 2006~2007년에 이루어진 하귀1지구 택지개발부지의 발굴조사 성과를 보면 최소한 新石器時代부터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東門川의 서쪽에서 확인되었는데 비록 좁은 면적이지만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그릇과 흔적이 남아 있어 하귀1리에서 인문활동의 역사는 新石器時代 後期(기원전 2000년경)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귀1리에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시점은 제주도에서 耽羅國의 형성시점과 괘를 같이한다. 耽羅國 成立期(기원전 200~기원후 200年)을 전후한 시기의 제주도내 마을은 삼양동이나 용담동 등지에서 확인되었으며, 하귀1리 역시 이들 유적과 동일한 시점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2000여년 전 하귀1리 마을은 동문천을 중심으로 둥근 형태의 움집과 움집 주변에 高床家屋(창고로 추정됨)과 우물, 圓形建物址, 眝水施設 등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집자리는 모두 30동이 조사되었는데 2~3동이 군집을 이루며, 20~30m 내외의 등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집자리 내부 바닥면의 규모는 9~13m2로 요즘 원룸의 규모와 비슷하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 확인되지 않던 특이한 형태의 원형건물지가 14동 조사되었는데 내부직경이 4.5~13m로 다양하나 대부분 대형인 점을 감안하면 일반적인 주거용 도라기보다는 다른 목적의 시설물일 가능성이 있다.

고상가옥은 2x2칸의 구조로 한쪽 변이 4m 내외로 정형화되었으며, 집자리와 연관되어 잉여생산물의 저장공간(창고)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저수시설과 우물은 제주도내 선사취락구조에서 일상적으로 생활용수를 이용하는 단면을 제공했으며, 상수원 개발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참항과 같은 기능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삶의 공간과 아울러 1기에 불과하지만 죽은자의 시설도 확인되었는데 바로 독무덤이다. 하귀1리 유적에서 확인된 집자리 주인공의 무덤으로 보이는 옹관묘는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육지부와 동일한 매장풍습이 있었음을 알게 해 주는 자요이다. 또한 유적의 전 면적에 걸쳐서 확인된 구(도랑)와 積石燒土遺構는 온전한 형태의 석기와 불에 탄 동물뼈가 출토된 점, 다량의 그릇이 깨진 채 발견된 점으로 보아 제사와 관련된 행위가 이루어졌던 장소이다.

이상과 같이 하귀1리 유적은 4000여 젼 전 신석기시대에 처음 사람 생활의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본격적인 마을의 형성은 2000여 년 전인 탐라시대 성립기~전기임을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또한 기존 지표조사나 주변 유적의 조사 예로 보아 도시개발부지뿐만 아니라 현재 마을이 있는 지역까지도 2000여 년 전의 마을이 넓게 분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페이스북 공유 트의터 공유


지명유래 게시물 목록을 게시물번호, 제목, 첨부파일 수,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로 나타낸 표입니다.
No. 제목 첨부 작성자 조회
설촌 유래 하귀1리 911
1043 군냉이(軍浪浦, 軍郞浦, 軍港洞) 관리자 1337
1042 파군봉(고도 50m∼100m) 관리자 1535
1041 항개(항포동) 관리자 1240
1040 관전동과 듬북개(조부포) 관리자 1260
1039 골머리(고수동) 관리자 1225
1038 비석거리(비석동) 관리자 1302
1037 신대기 모를(세시동 : 신시동) 관리자 988
1036 남주동 관리자 1074
210 기타지명 관리자 1228
209 장수영 관리자 1028
208 육서굴 관리자 759
207 광진이 관리자 711
206 안남동 관리자 935
초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