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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당교육
작성자 관리자 조회 808 회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떤 형태든지 敎育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비의도적이고 비제도적이긴 하겠으나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종족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추자도에서 교육기관의 형태를 갖추거나 가르치고 배우려는 의도가 수반된 교육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확실한  것을 알 수는 없는 실정이다.

< 書堂 敎育 >

다른 지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부터 서당 교육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94년 제주도교육청이 조사하여 펴낸 「濟州의 書堂敎育」에 보면 추자 지역에서도 1900년대 중반까지 서당교육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당의 교육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千字文, 童蒙先習, 축우, 啓蒙篇, 明心寶鑑, 학의집, 小學, 大學 등을 필사본을 가지고 가르치는데 암송을 바탕으로 한 단계별 통달식 교수에 습자 지도가 덧붙여지는 것이다. 하루 일과를 보면 아침에는 전날 배운 내용을 암송하고 오전에는 背通, 오후에는 훈장 앞에서 외기, 저녁에는 읽기 순으로 진행되었다.
 서당에서의 평가는 매일 이루어지는 평가 외에 ‘講’이라고 해서 매월 1회 그 동안  배운 내용을 암송하고 질문에 대답하는 종합평가가 이루어졌다.  ‘講’에서 합격하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게 되며 이 때 1등으로 합격한 아동의 학부모는 떡을 마련한다든지 해서 모든 학동들과 나누어 먹으며 즐기도록 했다. 학습과제를 이행하지 않았다든지 講에서 不通을 받든지 하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벌을 주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서당에서는 매일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의 범절과 관혼상제의 법도를 가르치고, 연날리기·팽이치기·제기차기·씨름·팔씨름·수영 등의 오락과 운동도 했으며,  사월초파일에는 등을 만들기도 하는 등 다양한 교육 활동을 벌였었다.
 추자 지역의 서당에서는 훈장에 대한 보수로 보리쌀과 바닷고기를 갖다 드림으로써 생활비를 마련해 준 것으로 조사되었다. 서당은 개인이 설치하는 것이었으므로 지속성이 없었으며 훈장의 형편에 따라 설치와 폐쇄가 이루어졌는데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학동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점차 폐쇄되었다.(제주의 서당교육 252∼255쪽)
 일제 강점기에는 ‘개량서당’으로 「진영서숙」(進英書塾)이 1916년 하추자도의  신양리와 묵리의 경계에 개설되었다. 숙장 김서순(묵리), 교사로는 이기호·조찬환·일본인 우치무라 도쿠히라(內村德平) 등이 재임하였다. 상추자도에는 일찍이 대서리와 영흥리에 개량서당이 있었으나 추자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면서 폐숙되었다.
(濟州敎育史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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