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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남원2리는 700여년전 고려 충렬왕16년 1290년 본 마을의 근변에 정씨 열녀문이 있었고 마을의 풍수를 막기 위하여 팽나무를 심어 마을을 수호한 고목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우리 선인들이 이 곳에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남원리 592-1번지 윗소남밭 고목나무는 1959년 사라호 태풍과 1970년 빌리호 태풍 피해로 없어졌음) 마을 이름이 정해짐은 1402년 이조 태종2년 탐라국을 제주라 하고 태종8년 무자 1408년에 정의현이 홍로읍에 설치되면서 마을 이름이 동옷귀와 서옷귀라 한 것으로 본다.

마을이름이 정해지기 전부터 정씨, 현씨, 오씨가 설촌하여 살아온 것을 알 수 있다. 외변에 있는 선묘 연대를 보면 600년 이전에 이 곳에 정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후 김씨, 고씨, 송씨가 정착하여 다세대를 이루었고 본 마을은 서옷귀 마을로서 집성하여 오면서 정의현 서의리로 칭하였다.1915년 제주도 서중면 서의리가 남원리로 마을 이름이 개칭되었다. 1925년 서중면 사무소가 의귀리에서 남원으로 이설을 하고 1935년에 서중면이 남원면으로 개칭되었다. 남원면사무소가 건립되면서 남원리는 면소재지 마을로 크게 발전하였으며 면사무소가 있기 전에는 제산이개와 설앞개를 중심으로 소수의 가구가 어업에 종사하며 살았다는 것을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남원리는 1935년 1, 2구로 분리되었으며 남원2리는 1구, 남원1리는 2구로 나누어졌다. 1950년에 도령에 따라 단일리로 합쳤으나 주민편의 행정리로 1953년에 1, 2리로 분리되면서 소재지 마을인 2구는 1리, 1구는 2리가 되었다. 1948년 4.3사건으로 인하여 마을이 폐허되어 남원1리로 소개되었다가 1950년에 치안유지상 남원2리 월산동에 성을 쌓아 재건하게 되었다.

설촌 후 마을이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포제를 지냈으며 1, 2리 공동 주관하에 포제를 지내오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합동포제가 되지 못하였다. 여러가지 어려움도 있었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을의 안녕은 물론 조상의 얼을 담은 고유문화의 차원에서 리민이 단합하여 매년 음력 정월 첫상정일에 제를 봉행하고 있다.

현재 남원2리는 서옷귀 본 리로서 자연부락의 형성으로 서의동, 월산동, 수은동으로 되어 있으며 비옥한 농토와 천혜자원인 황토에서 맛좋은 감귤이 생산되고 있음을 전국에 알리는 남원2리는 운주악의 정기를 받아 무궁한 발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