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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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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흥동(周興洞)
작성자 관리자 조회 1,220 회

주흥동은 우도면 4개리 12개동 중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다. 동세(洞勢)가 약한 관계로 고루 번영하라는 뜻에서 두루주(周)와 일어날 흥(興)자를 사용 주흥동이라 했다 하나 이 유래는 글자를 직역했다 할 수 있고, 이 마을 유래에는 여러 가지 일화가 있다.
예전, 주흥동은 연평리 11개동(중앙동 신설 이전) 중에서 가장 부유한(몹시 가난한 자도 없고, 그와 반대로 큰 부자도 없이 고루 잘사는) 마을이었다는 데서 연유했다는 설과 「돈올래(전흘동)」을 남쪽에 위치해 있어 마을 명칭도 돈올래와 관계가 있다고도 한다.
근해를 항해하던 상선(商船)이 태풍을 만나 난파하였는데 배에 실려 있던 엽전(동전)이 많이 올라온 길목이라는 마을이 「돈올래」이듯이 그 때 '돈을 많이 주은 마을'이라 하여 「주흥개」라고도 하고 가운데(中)에 개(포구)에 인접한 마을이라서 「중개」라고도 불리웠다 한다.
일설에는 과부 아들 「송중이」의 슬픈 사연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옛날 이 마을에 미역장사를 하는 남편과 「똥배질은 예펜」이란 별명을 가진 뚱뚱한 마누라가 살았다. 그들 사이에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일(渡日) 했고, 작은 아들은 죽어버렸기 때문에 부부만이 살았다. 그들 부부는 부지런하기 그지없었다. 마누라는 물질을 잘하여 미역 채취는 물론 전복 등 기타 해산물 채취도 우도에서 소문날 정도였다.
어느 날 남편이 본도로 미역장사를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돌풍을 만나 배가 뒤집혀 죽고 말았다. 마누라는 몇 날 며칠을 슬피 울며 통곡하였지만 한번 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갑자기 닥친 불행에 그녀는 일손을 놓고 몇 달을 보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녀는 앉아 있을 수만도 없었다. 물질을 시작하면서도 해녀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해 물질을 하고 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다른 해녀들은 그녀를 불쌍히 여겼다.
어느날,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해녀들과 떨어져 자맥질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 떨어져 있던 해녀 한 사람이 "똥배질은 예펜이 안 보염져! 태왁(드렁박)만 있져!!" 하고 소리쳤다. 물질을 하던 해녀들이 모여들었다.
「어이구 !  이 예펜이 죽은 것 닮다!」
다른 해녀의 외침이었다. 전복을 따다가도 물숨이 여유 있을 때 나오지 않고, 욕심을 부리다가 죽는 수가 있었다. 많은 해녀들이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호오이 - ! 」
긴 숨비소리의 뒤를 이어 처량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많은 해녀들이 소리나는 쪽으로 모여 들었다. 그곳에는 과부가 슬피울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녀들이 그녀를 에워싸 해안으로 나왔다. 그녀는 곧 실신했고 해녀들은 그녀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붙들고 잔디밭으로 옮겼다.
「이 예펜네 눈(수경)이랑 수건은 어떵 해신고? 」
옆에서 마누라의 손발을 주무르던 한 해녀의 놀란 목소리였다.
"게매? 게매?" 모여 웅성거리던 해녀들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이 예펜네 언제 머리 깍아시냐? 」
그러고 보니 과부의 머리가 단발되어 있었다. 놀란 해녀들은 무당을 불러왔다. 푸닥거리가 시작되었다.
얼마후 깨어난 과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전복 두 개를 보고 물 속에 자맥질을 하고 보니 그것은 전복이 아니고 놋잔 두개였다. 이상히 여긴 그녀는 놋잔을 가지려고 하니 놋잔이 있던 바다밑에 갑자기 사람이 사는 「구들(방)」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 방은 아랫마을의 구멍가게 주인방과 흡사했다.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도 바로 가게 주인이었다.
"이제 당신은 나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고 그는 그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발버둥을 치며 그곳을 피하려 하자 그는, "이제 당신은 나를 피할 수 없소. 이것이 증거요." 하며, 머리를 잘라 가지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눈물을 비오듯 쏟아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녀는 몸이 성치 않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러니 무당 출입이 잦을 수밖에, 사흘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출입하던 이 마을에 사는 송씨 무당의 출입은 더욱 잦아졌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과부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아이를 임신한 것이었다. 원래 그녀의 배가 불룩하게 나와 있어서 이웃에서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부끄럽게 생각한 과부는 마을을 떠날 것을 계획했다. 어는 이른 봄날, 그녀는 「대마도」로 출가하는 해녀들을 따라 마을을 떠났다. 과부는 대마도에서 아들을 출산하고 이름을 「송중이」라 했다.
칠년 후, 그러니까 「송중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그녀는 귀향, 아들을 송씨 무당에게 맡겼다. 자손이 없던 송씨는 「송중이」를 호강스럽게 키웠다. 그러다 보니 헤엄도 칠 줄 몰랐다.
어느날 「송중이」는 큰 물통에서 나뭇잎으로 배를 만들어 띄우며 놀다 실족하여 물에 빠지고 말았다. 수영할 줄을 몰랐던 송중이는 '이래착' '저래착' 곰세기(돌고래) 애기춤을 추듯하였다.
이것을 보고 있던 동네 아이들은,
"중이 잘힌다(헤엄친다). 잘 힌다." 하며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어린 아이들은 송중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양을 수영연습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가 물을 많이 먹고 기지맥진하여 물 속으로 잠기니 놀란 아이들이 "중이가 물에 빠졌져! 중이가 물에 빠졌져!" 하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이웃에는 김메는 아낙들도 있었지만 쥐가 물에 빠져서 애들이 좋아라고 외쳐 댄다고 생각해 내다보지도 않았다.
저녁이 되었다. 늦게까지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송씨 무당은 '중이'를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아들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을 알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아들의 시신을 건져 올렸다. '송중이'가 죽은 후 송씨도 화병으로 시름시름하다 죽고 말았다.  충격을 받은 과부는 아들의 원을 풀어주기 위해 무당이 되어 살다 죽었다 한다.
「송중이」의 이런 슬픈 사연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중개」라 했고 이를 한자식 표기로 개칭하면서 「주흥동」이라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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