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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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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온평리
작성자 관리자 조회 1,791 회

온평리의 옛이름은 "여을 또는 열운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38) 정의현 봉수대조에 "여을은 1601년 남사륵(권3)에 "여흔포" 1653년 탐라지에 "열운포" 탐라순력도(한라장측)에 "영혼포" 탐라지도와 "제주삽읍도충지도"에영혼포 영혼촌 1832년(순조 32년) 문비에 "여흔리"   탐라지 초본에 열운포 또 1750년경의 해동지도중 제주 3현도에 "영혼포" 1887년과 1895년의 고문서에 "온평리" 1899년의 정의군읍지와 지도에 "동·서 온평리" 속음청사에 열운이 토지대장에는 열운이 등으로  표기하였고 1914년 이후의 탐라약도에는 "온평리" 탐라기년에는 "열운이"라고 표기하였으며 제주읍지 정의현 방라조(아세아문화사)에는 여온리라하며 "민호는 9호이고 남자는 265명 여자는 326명(계 591명)"이라고 하였으며 "삼군 호구기관총책" 정의군 좌면 열온이의 연가는 104호이며 남자 280명 여자 264명(합 544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마을에서는 옛이름을 여러문헌들을 봐도 다양하게 호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영혼포"와 연혼포 영혼촌이라는 뜻은 한자 뜻 그대로 제주도 개벽신화인 "고, 량, 부" 세 성이 벽량국(금관국)에서 건너온 세 선녀를 온평리 바닷가인 "황루알"에서 맞이하여 "혼인지"에서 혼례를 올리고 수렵과 농사를 시작하였다고 하는 "삼성신화"와 연관된 마을이라고 하는 것을 알수 있다.
19세기 중반 이전까지는 "열운이"는주로 "열온이"로 호칭하다가 19세기 중반에 와서 "온평리"로 개칭하였으며 민간에서는 "온온(溫)은 따뜻하다는 뜻과 평(平)은 산이 없고 평평하다는 뜻으로 "온평"이라고 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19세기말(1899)에 와서는 "동·서 온평리"로 호칭하다가 다시 현재와 같은 "온평리" 통합되었으며 1914년 도사제 실시로 행정구역의 페합에 의거 정의군 좌면 온평리라 호칭하던 것을 남제주군 정의면 온평리라 하였고 1914년 이후의 지도 등에도 지금과 같은 "온평리"라 하였고 1915년 도사제 실시로 제주도 정의면 온평리 934년 면사무소를 고성에서 성산으로 이전하고 1935년 성산면 온평리라 하였고 1946년 8월 1일 도제실시로 산묵의 북제주군과 산남의 남제주군 설치로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면 온평리가 되고 1980. 12. 1 성산면이 읍 승격으로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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