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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마을약사

마을약사

상효라는 마을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문헌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현재 마을회관 북쪽에 조씨가 파고 이용해 왔던 데서 유래한 조가물, 알동네에 정씨가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정우영, 정우영과 웃가름 중심에 허씨가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허게우영, 허동갱이 우영 그리고 허질생이드르와 허선달밭 지명과 지경이 있어 조·정·허 세성씨가 정주하여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차차 쇠퇴하여 어디론가 모두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현존 세대의 정착 시조로 알려진 오씨 문중의 종가집 터에 당국의 보호를 받는 고목과 보다 오래된 고목의 뿌리가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또한 조씨의 선조가 당시 기묘사화를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전해 온다.
이러한 흔적과 구전되어 온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적어도 조선시대에 촌락이 성립되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무렵 이 마을의 이름은 토평리와 마찬가지로 돗드르였다. 문헌기록에 의하면 군위 오씨6세조가 약 400년전 조씨 생활 터전을 이어받아 정착하면서부터 부락의 근간을 이루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02년 탐라국을 제주라 칭하고 제주·대정·정의 삼군제를 실시할 때 상효·하효·신효는 효돈이라는 한 마을이었으며 정의군에 속하였고 1915년 도제 실시로 현재 서귀를 제주도 우면으로 개칭할 때 서효라 부르다가 1934년 우면이 서귀면으로 개칭됨과 동시에 서효는 상효로 개명되었다.
그후 1948년 4·3사건 때는 소개되어 이웃 마을로 흩어졌다가 이듬해 복구 되었다. 1953년 임시 행정조치로 상효1, 2리가 분리되었고 1981년 7월 1일 서귀포시 승격으로 행정구역이 변경 인근 마을인 토평·상효 1, 2, 3리를 합쳐 영천동 8개통으로 개편되었으며 1,2,3,4통은 토평, 5통은 서상효, 6통은 동상효, 7통읕 법호촌, 8통은 돈내코마을로 이루어져있다.
[상효1동마을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