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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마을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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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산이왓
작성자 관리자 조회 415 회

o 위치 : 토산 1리 1828번지
o 유래와 현황 : '시흥리' 사람 선산이가 자신의 밭이라고 주장한 데서 연유한 이름
o 전설 :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이다. 당시 이 밭의 원 소유주는 김종권의 부친이었다. 그 무렵 이 마을에는 성산, 구좌 근방에서 소금장수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어느 날 심돌에서 온 소금장수가 자신이 이 밭 주인이노라고 나섰다. 주장하는 바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 선산이라는 것이었다. 김종권네 집에서는 장난인 줄 알고 상대를 해주지 않으니 그는 관에 호소했다. 관에서는 심돌 소금장수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그에게 밭의 소유권을 인정해 줬다.
 원소유주는 너무 억울했다. 그러나 어찌 관을 상대로 싸울 수가 있단 말인가. 해 볼 도리가 없어 억울한 그대로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데, 열여섯 살 난 서당 학동 김경회가 자신이 관에 소지(訴紙)를 바쳐 김씨네 억울함을 하소연하겠노라고 나섰다.
 한번 관에 잘못 보였다가는 신세가 망하는 세상이니 제발 남의 일에 나서지 말 것을 동네 사람들은 말렸다. 그래도 그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소지를 써 원님에게 올렸다.
"토산리에 있는 선산이왓이 저 먼 심돌 사람 선산이 소유라면 이웃 마을 가스름에 있는 전단이왓은 중국 제나라 전단이라는 사람의 소유가 되어야 마땅하며 또 토산리 무당팟은 모든 무당들의 공소유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썼던 것이다. 원님은 소장을 보고는 소지를 쓴 장본인을 불러들이라고 명했다. 사람들은 김경회가 관가에 불려가 경을 칠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원님은 김경회의 논리정연한 소지의 내용에 감복하여 그를 보고자 했던 것이다. 선산이왓은 결국 김종권네 집안으로 소유권이 되돌려지고 김경회는 원님이 아껴 그의 임기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갈 때 데려가니 그의 문필은 나날이 일취월장하여 승정원 사서직에까지 올라가는 벼슬을 살았는데 이 곳 출신으로서는 최고 관직을 보했던 터이다.
 이 후부터 사람들은 욕심을 부려 자기 것이라고 터무니없이 주장할 때, '선산이왓은 다 심돌 선산이꺼냐?'라고 나무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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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소소름 / 쇠오름 / 우악(牛岳) 관리자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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