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치 : 위미 1리 2973번지 바닷가 일대
◈ 유래와 현황 : 약 300여 년 전에 이 지역에 가장 먼저 이주해와 터를 잡은 연안 김씨가 살았던 곳인데 이를 김댁가문(金宅家門) <큰댁/큰집 >이라 했고 그 집안의 집터가 무려 3.000여 평에 달한다. 이 집안은 매우 부자여서 경작지가 서귀포의 <하는 >에까지 있어서 추수철이 되면 곡식을 수확해 나르는 마차와 일꾼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하며, <큰댁/큰집 >을 중심으로 고권하의 선조가 이주한 <알우영김 >, 김남선일가의 <동집 >, 김대옥 집안의 <알별감집 >, 김만권의 조부의 <웃집 >등이 들어서서 마을을 이뤘다. 바로 마을의 중심이 <큰댁/큰집 >이라 마을을 이뤘다.
◈ 속담 : 한탈에 보리개역! = 터무늬없는 것을 요구하는 것을 빗대는 말,
※ 김댁가문의 한 아이가 부모의 무릎에서만 키워질 정도로 귀하게 여겨 해달라는 것, 달라는 것을 모두 들어주어 응석받이가 되었다. 어느 정월 초하루 설날이었다. 부모는 아이를 앉혀놓고, "너 오늘만은 부족한 게 없겠지?"라고 물었다. 속담에 ,'정월 초하루날과 팔월보름날 닮으면 환상할 개아들놈 없다'라고 할만치 먹을 것 입을 것이 흡족한 날이 명절날이니, 차마 뭘 더 요구하지 않으리라 여기고 물어본 것이었다.
그 아이는 "한탈에 보리개역!"이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설날에 초여름 보리걷이 때나 먹는 장딸기와 보리미숫가루를 달라고 하다니, 그 아이가 불면 꺼질까 잡으면 터질까 잡으면 터질까 애지중지 아이가「가운디썰」에 맨먼저 정착하여 세도를 부린 <큰집 >어른이란 설이 예로부터 파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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